10년 육아에서 재취업을 위한 현실적인 3가지 방법
나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화장품 분야의 대기업에 입사했다. 3년 정도 재직하다 결혼을 했고, 그 후 10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엄마'로만 살았다. 30대 중반이 되어 다시 재취업의 문을 두드리려니 앞이 막막하고 두려움이 앞섰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학창 시절에 배웠던 지식과 기술들은 이미 무용지물이 된 것만 같았다. 아이 셋에 막내는 겨우 4살. 하지만 살림만 하기에는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했다. 아이들을 케어하면서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아보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아이 셋을 키우며 공부와 직장 생활까지 병행했던 나의 치열했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혹시 지금의 나처럼 막막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당시 크게 세 가지에 집중했다.
재취업을 위해 크게 아래 3가지에 집중했다.
취업을 결심했을 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역시 아이들이었다. 내가 일을 시작하려면 아이들은 자기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했고, 집안일도 분담해야만 했다. 엄마는 생각보다 약한 존재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해주지 말자. 대신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자. 물론 처음에는 아이들의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아이들은 점차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존경하게 된다. 그 다음, 당당하게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나는 아래의 세 가지에 집중했다.
1.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시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갈 때쯤이면 실내화 빠는 법을 가르쳤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밥 짓기와 설거지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하나씩 가르쳤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제 몫을 해내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종종 묻는다. "아이들이 하면 더럽고 엉망일 텐데, 답답하지 않나요?"
물론 처음에는 당연히 못 한다.
내 기준에는 차지 않아 마음에 안 들 때도 있지만, 세상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아이들은 오죽할까. '아이들은 원래 못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진다.
다음번엔 이번보다 더 잘할 거라는 걸 믿기에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틈틈이 요령을 알려주고, 스스로 해낼 수 있게 기회를 주고, 아낌없이 칭찬하다 보면 어느새 그 일은 '당연한 일'이 된다. 그리고 이 당연함은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그렇게 2년 정도 꾸준히 반복하면 완전히 몸에 밴다. 첫째를 잘 가르쳐 놓으니 둘째와 셋째는 자연스럽게 형과 누나를 보고 따라왔다. 그래서 나는 실내화 빨기부터 시작해서 걸레질, 설거지, 쓰레기 분리수거, 화장실 청소까지 집안의 모든 일을 하도록 했다. 특히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교복을 스스로 빨아 입도록 했다. 물론 깨끗하게 세탁하는 방법을 여러 번 세심하게 가르쳐주었다. 아이들은 내 생각보다 잘한다.
2. 방송통신대학교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다.
한때는 학교 공부도 잘했고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에도 입사했었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의 나는 그저 경력 단절 여성일 뿐이었다. 다시 직장을 구해보려니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공장 아니면 서빙 정도가 전부였다. 워낙 체력이 약해 몸 쓰는 일은 엄두도 나지 않았고, 잠시 경험해 본 공장 일은 매일 반복되는 단순 작업이라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공장에서 한 달간 치열하게 일해 번 첫 월급으로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고, 마침내 워드와 엑셀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 덕분에 공공기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1년 정도 성실히 근무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현실은 차가웠다.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급여 차별과 인간적인 소외감은 내 마음속에 공부에 대한 갈망을 다시 지폈다. 무엇보다 지금의 낮은 대우에서 벗어나려면, 공부를 통해 나 자신의 가치를 높여야만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돈도 벌고 공부까지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 막막하기만 했다. 일반 대학은 엄두도 낼 수 없었기에, 학비가 저렴하고 시간 활용이 자유로운 방송통신대학교 컴퓨터과학과를 선택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일주일에 두 번은 밤마다 선배들이 이끄는 스터디에 참여하며 주말까지 반납한 채 공부에 매진했다.


3. 과학실에서 과학조교를 하면서 대학 공부하다.
배움에 대한 열망은 컸지만, 현실적으로 돈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반적인 직장은 병행하기 어려웠기에, 출근하면서도 틈틈이 공부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교육청 사이트에서 과학 조교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다. 마침 지인으로부터 과학 조교는 업무 중간에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조언을 들었고, 간절한 마음으로 지원한 끝에 중학교 과학실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곳은 내가 공부를 이어가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업무 외의 시간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책을 펼 수 있었고, 학교라는 환경 특성상 배움에 대해 매우 관대했다. 특히 선생님들께서는 나의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셨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업무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고, 무엇보다 과학실 부장님께서 보내주신 따뜻한 격려와 응원은 큰 힘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한 분이다.
마침내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돌보고 일을 병행하며 공부하다 보니, 막상 졸업은 했어도 컴퓨터공학에 대한 내 지식이 여전히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당시 일하던 과학 조교 자리는 마음만 먹으면 정년까지도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진정으로 꿈꾸던 모습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안정 대신 도전을 선택했고, 사직서를 낸 뒤 ㅇㅇ대학교 연구실에 들어가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재취업에는 성공했지만, 아직은 내가 원하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역량을 더 키우고 싶었다. 과학 조교로 일하며 한 달에 70만 원을 벌던 삶에서, 이제는 하루에 70만 원을 벌 수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마무리
10년이라는 공백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서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세월이 다시금 필요하다. 나는 학부 시절부터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까지, 기꺼이 10년이라는 시간을 다시 투자했다. 전문가라는 이름표는 온전히 자기계발에 모든 전력을 다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경력 단절을 겪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시간을 투자해 그 분야의 확실한 전문가가 되시길 권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먼저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분담시켜 자신의 시간을 확보하자. 그리고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도전하며, 10년이라는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해 보자. 그렇게 꾸준히 나아간다면, 반드시 여러분이 꿈꾸던 것보다 더 멋진 직업과 미래를 갖게 될 것이라고 내가 확신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