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부터 시작된 나의 부동산
나는 많은 이사를 통해 깨달았다. 부동산은 일하는 돈(자산)이 아니며, 집은 생활하는 데 필요한 '거주' 공간이고 필수재라고 생각한다. 부동산은 오래 보유하고 있으면 자산이 증식되는 건 맞다. 나는 2000년에 매입해서 재개발된 아파트를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25년간 보유하고 있지만 주식투자보다는 수익률이 좋지 않다. 나는 주식투자를 부동산투자처럼 하고 있다. 한번 매입하면 25년, 30년, 아니면 영원히 하려고 한다. 부동산투자에서 다져진 장기투자를 주식에 적용해보자.
가난 탈출을 향한 오만과 운의 시작
돌이켜보면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부동산 투자는커녕 제대로 된 금융 공부 한 번 해본 적 없이, 그저 부모님의 가난이 너무 싫어 일찍 결혼했고, 내가 돈을 벌면 잘 살 수 있다는 오만한 믿음 하나로 시작했던 인생이였다. 결혼 전 모았던 전 재산을 남편 사업에 투자했다 망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월세 50만 원에 5만 원짜리 월세방을 전전해야만 했다. 아이 분유값조차 앞집 미용실 아주머니께 빌려야 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저려온다. 하지만 시련 속에서 남편 사업이 지방에서 잘 풀리기 시작했고, 내 인생의 종잣돈이 된 3천만 원을 모을 수 있었다. 그 돈으로 신축 아파트를 '영끌'해 사면서 첫 내 집을 마련했다.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기쁨은 잠시, 내 삶의 여정은 IMF라는 거대한 파도와 함께 더욱 험난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위기 속의 절박한 결단과 자본주의의 깨달음
IMF 벼랑 끝에서 내린 생존 결정
1997년 12월 3일, IMF 외환 위기는 내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대출 50%로 샀던 아파트의 이자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고, 남편은 2년간 실직했다. 하필 그때 셋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불행이 한꺼번에 닥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셋째 출산 여부까지 고민하는 처참한 시간을 보낸 뒤, 나는 결심했다. 셋째를 낳는 대신 이사를 가기로. 살고 있던 집은 전세를 주고 타 지역 빌라로 가려 했지만, 예전에 살던 빌라 생활의 불편함과 전 재산인 3천만 원을 전세금으로 남에게 맡겨야 한다는 불안감은 나를 망설이게 했다.
결국 나는 저층 아파트를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고층아파트는 꿈도 못 꾸고, 저층에 오래된 세대수가 많은, 방이 세 개인 낡은 아파트를 매입했다. 이때는 IMF 직후여서 집값이 하락하고 아무도 집을 사려 하지 않던 때였지만, 나는 진짜 필요해서 매입했기에 오히려 신이 도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집을 담보로 신용을 얻고 자본을 배우다
낡은 아파트를 매입하고 약간의 대출로 2년 정도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삶은 녹록지 않아, 결국 첫 내 집인 아파트를 팔아야만 했다. 아파트 판 돈 덕분에 숨통이 트였다.
낡은 아파트는 매입 후 3~4년이 지나자 매매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생활비가 없어서 대출을 받을려고 했는데 가정주부는 대출을 안해주더라, 나는 여기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가정주부는 신용대출을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곧바로 금융 공부로 이어졌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으며 자본주의 시스템을 몸으로 배우기 시작하게된다.
낡은 아파트에서 7~8년을 살았을 무렵, 재개발 소식이 들려왔다. 거의 10년 가까이 살고 받은 보상금으로 24평형 아파트를 매입했다. 이 아파트는 15년간 보유했지만 큰 수익은 없었고 2020년 매도해서 주식투자를 하게된다. 하여튼 아파트 재개발 기간 동안에는 관리비 10만원만 내는 빌라에서 4년, 막내딸 고2 때가지 살게된다. 이때 경제적으로 부담이 안되서 아이셋을 키울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번 돈으로 얻은 성취감과 거주 철학의 완성
마침내 재개발된 새아파트에 입주할 시기가 왔을 때, 나는 이미 사업을 시작한 상태였다. 첫 집을 살 때 남편이 번 종잣돈이었다면, 이 아파트는 내가 직접 번 돈에 대출을 받아 입주하게 된다. 내가 벌어 마련한 돈으로 집을 샀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아파트 가격은 2배 가까이 올랐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사업에 집중할 시기가 되자, 집과 사무실의 거리가 문제가 되어 새아파트를 전세로 내주고 회사 근처 월세 아파트로 다시 이사했다. 이렇게 내가 거주했던 집들을 시간순으로 나열해보니, 첫 내 집을 경제적 이유로 잃었던 아픔 때문에 내 것에 대한 소유욕과 끈기가 강해진것 같다. 이것은 자산을 파는 것을 힘들어하는 성향으로 이어졌고, 사업과 주식 투자에서도 꾸준함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동산은 삶의 터전, 그리고 셋째가 가져온 행운
나의 30년 부동산 좌충우돌 이야기는 끈기와 꾸준함의 결과물이다. IMF라는 최악의 위기 속에서 셋째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고, 그 아이를 위해 꿋꿋이 보금자리를 지키려 했던 나의 마음을 하늘이 도와주신 것이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나는 이 오랜 경험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열심히 공부해 부동산 투자를 잘할 수도 있지만, 많은 이사를 통해 깨달은 것은 부동산은 일하는 돈(자산)이 아니며, 집은 생활하는 데 필요한 '거주' 공간에 가장 큰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피땀 어린 세월끝에 얻은 나의 가장 소중한 부동산 철학이다.
끝.
'투자 > 부동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자가에서 월세로 역주행! 부자가 되는 '건강-투자' 동시 가능한 경험담 (3) | 2025.11.26 |
|---|